‘히든 피겨스’는 NASA의 우주 개발 초기에 실제로 활약했던 흑인 여성 과학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단순한 위인전이 아닌, 구조적 인종차별과 성차별 속에서도 자신들의 자리를 쟁취해낸 여성들의 투쟁과 헌신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본 글에서는 실화, 인종차별,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히든 피겨스’의 사회적 의미와 영화적 메시지를 분석해본다.
실화 – 숨겨진 역사를 드러낸 영화
히든 피겨스는 1960년대 미국 NASA에서 실제로 활약했던 세 명의 흑인 여성 수학자,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당시 NASA는 미국-소련 간 우주 경쟁이 치열하던 냉전 시대였고, 우주비행사의 궤도 계산과 로켓 발사, 귀환 등에는 고도의 수학적 계산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흑인 여성들이 핵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조명되지 않았다. 이 영화는 그 ‘숨겨진 인물들’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단지 개인의 성공 이야기를 넘어, 역사에서 배제된 존재들을 복권시키는 작업을 수행한다. 실제로 캐서린 존슨은 미국 항공우주국의 첫 궤도 계산을 성공시킨 인물이었으며, 그녀의 수식은 우주비행사 존 글렌의 지구 궤도 비행에 핵심이었다. 영화는 이러한 성취를 단순히 기술적 수치가 아닌, 한 인간의 지적 능력과 인내의 상징으로 풀어낸다. 실화 기반 영화는 종종 극적 재미를 위해 각색되지만, 히든 피겨스는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인물 중심 서사를 통해 감정적 몰입을 극대화한다. 수학, 과학이라는 다소 딱딱한 주제조차 흥미롭게 풀어낸 이유는, 그것이 곧 ‘사람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숨은 인물(Hidden Figures)’이라는 제목처럼, 그들은 수식 뒤에 숨어 있던 ‘얼굴’이었고, 그들이 있었기에 인류는 우주로 갈 수 있었다. 또한 실화라는 요소는 관객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 “이 모든 것이 실제였다는 것”은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를 단순한 감동에서 사회적 책임으로 확장시킨다. 이 영화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필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무대 밖에 놓고 있는가?”
인종차별 – 제도와 시선 속의 이중 억압
‘히든 피겨스’는 단순한 인물극이 아니라, 제도적 인종차별의 현실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당시 미국은 ‘짐 크로우 법’이라는 인종분리법이 존재했고, NASA조차도 인종에 따라 화장실, 책상, 커피포트까지 분리되어 있었다. 영화는 이처럼 물리적 차별뿐 아니라, 일상 곳곳에 스며든 차별의 구조를 보여준다. 주인공 캐서린은 백인 남성 과학자들과 같은 방에 앉아 있으면서도, ‘컬러드’ 전용 화장실을 가기 위해 하루에 수십 분을 건물 밖으로 뛰어다녀야 한다. 도로시는 새로 도입된 IBM 컴퓨터를 스스로 익혀 운영 가능한 최초의 여성 관리자였지만, 공식적으로는 승진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메리는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법정에서 허락을 받아야 했고, 이는 인종과 성별이 동시에 억압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영화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도 비난이나 감정적 폭발보다는, 조용한 저항과 실력으로 정면 돌파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감동을 자아낸다. 캐서린이 상사에게 “저도 마실 커피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하거나, 도로시가 IBM 매뉴얼을 몰래 빌려와 독학하는 장면은 단순한 영화적 장치가 아닌, 실제로 당시 흑인 여성들이 취했던 전략이었다. 히든 피겨스는 말한다. 인종차별은 과거의 일이 아니며, 제도와 구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 안에서 침묵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바꾸려는 작은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함께 전한다.
여성 – 과학과 수학 분야의 유리천장을 깨다
히든 피겨스는 인종 문제뿐 아니라, 여성이라는 존재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억압받았는지에 대한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 당시 NASA의 계산부는 ‘컴퓨터’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그 구성원은 대부분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 보조 인력으로 취급받았고, ‘과학자’나 ‘공학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 영화의 여성들은 단순히 ‘감정적으로 강한’ 주인공이 아니라, 정확하고 논리적인 사고력과 끈기 있는 태도로 무장한 전문가들이다. 캐서린은 고급 수학을 활용해 탄도 궤도를 계산하고, 메리는 공학 자격을 얻기 위해 밤마다 공부하며, 도로시는 팀 전체를 이끌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익힌다. 그들의 행동은 ‘희생’이 아니라 ‘전문성’이다. 여성의 능력은 종종 감정이나 외모로 평가되지만, 히든 피겨스는 여성도 최고의 과학자, 최고의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음을 실력으로 보여준다. 특히, 남성 중심의 우주개발 서사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당당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여성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 진출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영화는 이들의 일과 육아, 사회적 시선 사이의 균형을 리얼하게 묘사한다. 한 사람의 ‘성공’이 단지 개인의 투지가 아니라, 가족의 희생과 사회적 지지 속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이는 여성의 성장 서사를 단순히 영웅 서사로 소비하지 않고, 현실 속 구조적 난관과의 싸움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 있다.
‘히든 피겨스’는 단순히 흑인 여성들의 감동 실화를 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인종, 성차별,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어떤 이들의 이름은 역사의 페이지에 남지만, 어떤 이들은 계산서 뒤에 가려진 ‘숫자’로만 존재한다는 현실을 꼬집는다. 그리고 말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름 없이 싸우고 있는 누군가가 존재한다고.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눈물짓는 이유는, 그것이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여성이 능력보다 외모로 평가받고, 많은 이들이 이름 없이 수치를 만드는 ‘히든 피겨’로 살아간다. 이 영화는 그러한 이들을 향해 말한다. “당신은 숨겨져 있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