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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의 작별 감상 (언어비판, 영화실험성, 이미지철학)

by mongshoulder 2025. 7. 22.

언어와의 작별 영화 포스터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언어와의 작별(Adieu au Langage)은 일반적인 줄거리를 따르지 않는 영화다. 이 작품은 말 그대로 ‘언어와 결별’하려는 시도이자, 영상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고다르의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70분짜리 시청각 실험이다. 본 리뷰에서는 이 영화를 언어비판, 영화실험성, 이미지철학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나눠 감상하고 분석한다. 고다르의 후기 영화가 담고 있는 실험성과 정치성, 그리고 우리가 ‘보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이 작품의 핵심을 깊이 파헤쳐본다.

언어라는 질서에 반기를 든 고다르의 비판

영화 언어와의 작별에서 고다르는 제목 그대로 ‘언어’를 해체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는 이 영화에서 단순히 말이나 대사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언어 자체가 세계를 구획하고, 관객의 인식을 통제하는 일종의 질서로 작용해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고다르는 바로 이 언어의 질서에 반기를 들고, 그것과 결별하려 시도한다.

기존의 영화 언어는 플롯, 인물, 대사, 음악 등의 요소들이 긴밀하게 얽혀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언어는 인물의 심리와 사건을 설명하고, 관객의 감정을 유도하는 통로가 된다. 그러나 고다르는 이런 방식 자체가 이미 권력의 구조라고 비판한다. 특정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모든 영화 언어는 관객에게 일정한 사유 방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언어와의 작별에서는 이러한 언어적 요소들이 해체된다. 인물들은 일관되지 않은 대사들을 반복하거나, 서로 전혀 무관한 문장을 주고받는다. 자막조차 일부러 왜곡되거나 일관성을 잃은 방식으로 제공된다. 이는 단지 실험적 장치가 아니라, 언어의 절대성에 대한 고다르의 급진적 부정이며, '말'이라는 매개가 오히려 진실에 도달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메시지를 시각화한 것이다.

고다르가 제시하는 비판은 데리다의 해체주의와 닿아 있다. 언어는 고정된 의미를 갖지 않으며, 맥락과 차이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된다는 생각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듯 보이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사가 이미지와 따로 놀게 만드는 연출은 이론적 사유를 시청각적 언어로 구현한 결과다. 결국 고다르는 언어란 것이 결코 순수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며, 때로는 가장 큰 오해의 근원이 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또한 영화 중간중간 삽입되는 인용문과 철학적 문장들은 고다르의 비판의식을 더욱 강화한다. 니체, 루소, 데리다, 바르트 등의 텍스트들이 이미지 위에 겹쳐지거나 낭독되는데, 이는 단지 지적인 장식이 아니라, 관객의 사고 흐름을 끊어놓고 기존 내러티브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이다. 고다르는 이처럼 언어를 해체하고, 비언어적 진실에 도달하려는 영화를 실현한다.

고다르의 영화실험성

언어와의 작별은 단순한 ‘예술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영화라는 매체 자체를 대상으로 삼은 해체 실험이며, 기존의 영상문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작업이다. 고다르는 이 작품을 통해 형식과 장르, 기술과 내용, 관객의 시청 방식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모든 요소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3D 영상의 활용이다. 이 영화는 고다르가 디지털 3D 카메라로 제작한 작품으로, 할리우드의 입체효과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3D 기술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특정 장면에서는 왼쪽 눈과 오른쪽 눈 각각에 서로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기법을 통해, 관객이 어떤 이미지를 선택해 보아야 할지를 강제로 체험하게 만든다. 이는 시청자에게 ‘어떤 것을 볼 것인가’를 선택하게 만드는 주체화의 실험이자, 기계적 시청 방식을 거부하는 영화적 저항이다.

편집 또한 기존의 리듬을 철저히 깨뜨린다. 컷은 규칙 없이 전환되고, 사운드는 이미지와 분리되어 존재하거나, 과도하게 증폭되기도 한다. 이 불규칙성은 관객에게 익숙한 영화 문법을 붕괴시키며, 감정적 동기화나 인과적 사고를 무력화시킨다. 고다르는 관객이 스스로 구성하고 사고하도록 만드는 독특한 영화적 경험을 설계한다.

또한 장면 구성에서는 전통적 내러티브 구조가 완전히 배제된다. 개와 남녀의 관계를 축으로 진행되는 듯한 이야기마저도 반복과 탈선으로 일관성을 상실한다. 이는 단지 플롯의 파괴가 아닌, 영화라는 장르가 가질 수 있는 형식의 자유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것이다. 플롯, 캐릭터, 대사, 구도 모두가 의도적으로 비선형적이고 중첩되며, 이로 인해 관객은 영화의 경계를 넘어선 ‘감각의 흐름’을 체험하게 된다.

결국 고다르의 영화실험성은 단순한 형식 놀이나 비평적 태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실험이다. 고다르는 이 영화에서 “영화는 단지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고 반응하며 철학할 수 있는 매체”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언어와의 작별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급진적 응답이다.

이미지철학으로 읽는 고다르의 시선 구조

고다르의 후기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는 ‘이미지란 무엇인가’이다. 언어와의 작별은 이미지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시각적 정보가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고 인식을 조직하는 철학적 도구임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영화다. 이미지철학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이 영화에서의 이미지는 단지 피사체의 재현이 아니라, 감정과 사유, 혹은 오히려 그 결여를 전달하는 구조다. 고다르는 이미지를 통해 말하지 않고도 질문하고, 설명 없이도 저항한다. 이는 들뢰즈의 ‘시간-이미지’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들뢰즈는 현대 영화가 이야기 중심의 ‘운동-이미지’에서 벗어나, 시간의 지각과 정지, 불연속성을 드러내는 ‘시간-이미지’로 이동했다고 보았다. 언어와의 작별은 이 흐름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다.

고다르는 인물의 클로즈업, 카메라의 느린 팬, 대칭되지 않은 구도, 반복되는 장면 등을 통해 관객의 지각을 흔든다. 이미지가 줄 수 있는 정보는 제한되지만, 오히려 그 제한성 속에서 감정은 더 절실하게 드러난다. 이는 감정의 과잉이 아닌, 감정의 결핍을 통해 역설적으로 감정에 도달하는 방식이다.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말처럼, 고다르의 이미지는 “무엇인가를 보이기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의식하게 만드는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이 영화의 이미지는 자율적이다. 텍스트나 대사의 해설 없이도 이미지 자체가 의미를 생산하며, 이로 인해 관객은 감상자가 아니라 해석자가 되어야 한다. 고다르는 이미지라는 시청각 기호를 통해 인간과 세계의 관계, 언어의 한계, 감정의 잔여 등을 시적으로 풀어낸다. 개의 시점으로 전환되는 시퀀스, 책을 읽는 장면, 반복적으로 나오는 창문 너머의 풍경은 모두 이미지가 감정을 ‘말하지 않고’ 전달하는 방식이다.

결국 고다르에게 있어 이미지는 철학이다. 그것은 ‘사유하는 장면’이며,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까지 도달하려는 예술적 도구다. 언어와의 작별은 언어를 내려놓고 이미지로 철학하려는 시도이며, 그것은 매우 불친절하지만 동시에 진실에 가까운 형식이다. 이미지철학으로서의 영화, 그 정점에 고다르의 이 작품이 있다.

언어와의 작별은 결코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줄거리도 명확하지 않고, 대사도 일관되지 않으며, 편집과 구도조차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불친절함이야말로 고다르가 영화라는 매체에 던지는 마지막이자 가장 강력한 질문이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언어 없이, 이야기 없이, 감정 없이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가능한가? 그리고 우리는 그런 영화를 어떻게 감각하고, 해석할 수 있는가?

이 영화는 설명을 거부한다. 대신 감정의 흐름과 이미지의 구조, 언어의 결핍을 통해 진실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언어와의 작별은 단지 언어와 결별한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예술을 철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작업이다. 그것은 고다르의 유작 같은 선언이며, 영화사의 가장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질문 중 하나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