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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스킨의 충격 (소외, 상징, 공포)

by mongshoulder 2025. 7. 23.

언더 더 스킨 영화 포스터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영화 ‘언더 더 스킨(Under the Skin, 2013)’은 보기 드문 실험 영화다.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한 이 작품은 외계인의 시선을 통해 인간 세계를 관찰하고 해체하는 서사 구조로, 관객에게 강한 이질감과 충격을 선사한다. 본 리뷰에서는 ‘언더 더 스킨’이 제시하는 소외감의 정서, 상징적 시각 표현, 그리고 불쾌한 공포의 정체를 깊이 있게 분석하며, 이 영화가 왜 여전히 현대 영화사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소외: 외계 존재의 시선과 인간 세계

‘언더 더 스킨’은 외계인의 시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외계 존재는 스칼렛 요한슨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스코틀랜드 도심을 배경으로 인간 남성들을 유인하고 그들을 제거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한 SF 서사를 담고 있지 않다. 감독은 철저하게 인간의 세계를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어떤 조건에서 얼마나 소외될 수 있는지를 되묻게 된다. 외계인인 주인공은 인간 사회에 섞이지만, 그 안에서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단절되어 있다. 그녀는 거리의 말, 표정, 대화의 문맥을 해석하지 못하며, 심지어 자신의 육체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이 낯섦은 곧 소외감으로 전이된다. 그녀는 물리적으로는 인간과 동일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완전히 격리된 존재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이어지는 단절된 사운드와 무표정한 얼굴은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감독은 현실 세계를 일종의 실험실처럼 보여준다. 실제 일반인을 대상으로 몰래카메라처럼 촬영한 장면들을 삽입하여 현실감을 강화하면서도, 동시에 외계인의 시선을 더욱 생생히 전달한다. 이로 인해 관객은 외계인과 동일한 시점을 공유하게 되며, 점차 인간 세계 자체가 기괴하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조차 의심스러운 풍경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런 소외는 단지 외계인이라는 존재적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나아가 우리 모두가 일정한 조건 속에서 ‘타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여성이라는 존재, 혹은 장애를 가진 남성 캐릭터(얼굴 기형이 있는 인물)와의 관계에서 외계인은 처음으로 감정을 경험한다. 이 감정은 인간과의 관계를 원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변모하지만, 결국 더 깊은 소외로 이어진다. ‘언더 더 스킨’은 이처럼 소외라는 감정을 SF적 장르 너머에서 풀어낸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존재, 정체성을 찾지 못한 이방인, 육체와 감정이 일치하지 않는 불일치의 상태 등은 모두 소외의 다양한 얼굴이다. 관객은 그 외계인을 보며, 동시에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타자들이 배제되어 있는지를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불편함이 아닌, 깊은 자각과 불안으로 이어진다.

상징: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한 철학적 은유

‘언더 더 스킨’은 대사보다 이미지와 사운드에 의존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거의 모든 장면은 상징과 은유로 구성되어 있다. 외계인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인간은 단지 생물학적 대상이 아닌, 기호와 구조의 집합이다. 영화는 현실적인 화면을 배경으로 비현실적인 공간을 지속적으로 배치하며,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가장 인상 깊은 상징은 검은 액체 공간이다. 외계인이 남성을 유인하면 그들은 알몸으로 그 공간에 들어서고, 천천히 가라앉는다. 이때의 화면은 현실의 물리 법칙과 단절된 듯이 표현되며, 마치 무의식의 세계를 묘사한 것처럼 비현실적이다. 이 공간은 육체가 해체되고 존재가 사라지는 장소로, 인간 존재의 덧없음과 외계 존재가 인간을 도구화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외계인이 차를 타고 스코틀랜드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장면은 현실과 상징의 경계를 허문다. 카메라는 도로의 패턴, 도시의 불빛, 사람들의 표정 등을 반복적으로 비추며 그것들을 일종의 추상 이미지로 전환한다. 이러한 연출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현실의 기호적 구조를 해체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인간은 도시 속에서 단지 소비되고 버려지는 존재일 뿐이며, 외계인의 눈에 비친 인간은 대상화되고 익명화된 존재다. 사운드 디자인 또한 강력한 상징 장치로 기능한다. 영화에는 배경음악이 거의 없고, 대신 심박소리, 잡음, 금속성의 음향이 중심이 된다. 이 사운드는 외계인의 시점에서 느끼는 인간 세계의 낯섦을 극대화하며, 관객이 마치 외계인의 내면을 직접 체험하는 것 같은 효과를 유도한다. 특히 유인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은 매혹과 공포가 혼재된 감정을 형성하며, 영화 전반에 걸쳐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이 영화의 상징성은 인간 존재에 대한 은유로 귀결된다. 외계인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이 아니다. 그녀는 육체와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순간에 파괴된다. 이는 곧 ‘존재란 무엇인가?’, ‘육체는 자아인가?’ 같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며, 영화가 단순히 외계인의 시선을 빌려 인간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존재 자체를 해부하는 수단이 됨을 보여준다.

공포: 심리적 불쾌감과 정서적 긴장

‘언더 더 스킨’은 전통적인 공포 영화의 장르적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이 영화의 공포는 귀신이나 괴물, 폭력 장면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포는 정서적 불쾌감과 지속적인 긴장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러한 공포는 관객을 단순히 놀라게 하거나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로 밀어 넣는다. 외계인의 눈에 비친 인간 세계는 차갑고 낯설며 위협적이다. 반대로 인간들이 외계인을 만나는 순간은 매혹과 동시에 혼란을 낳는다. 그들은 자신이 유혹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자신도 모르게 존재를 소멸당한다. 이처럼 서사적으로 명확한 위협이 존재하지 않지만, 영화는 끊임없는 불안감으로 관객을 휘감는다. 또한 영화는 일반적인 클라이맥스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이야기의 갈등은 내면에서 점차 축적되며, 외부로 폭발하지 않는다. 외계인이 인간의 감정과 고통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은 미묘하고 조용하다. 그럼에도 관객은 그녀의 변화가 오히려 불안을 가중시킨다는 점에서 불쾌감을 느낀다. 감정의 개입은 공감을 유발하는 동시에, 이 존재가 더 이상 통제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긴장을 자아낸다. 특히 영화 후반부 숲 속 장면은 극적인 공포를 만들어낸다. 인간 사회의 경계에서 벗어난 공간에서 외계인은 남성에게 공격당하고, 결국 파괴된다. 이 장면은 인간이 외계 존재를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질적인 존재를 본능적으로 배척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외계인은 오히려 피해자가 되고, 인간이 가해자가 되는 순간이다. 관객은 이 역전의 순간에 놀라며, 기존에 가진 도식적 정의감마저 의심하게 된다. 결국 ‘언더 더 스킨’의 공포는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한 공포, 소속되지 못함에서 오는 공포,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무자비함에 대한 자각에서 온다. 이 영화는 그 어떤 장르영화보다도 깊은 공포를 전달한다. 그것은 단지 감각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언더 더 스킨’은 외계인의 눈을 통해 인간을 해석함으로써, 우리 스스로를 낯설게 바라보게 만든다. 이 영화는 소외된 존재의 정체성과 감정, 상징을 통한 철학적 질문, 그리고 장르적 틀을 깨는 공포로 관객에게 깊은 충격을 남긴다. 단순한 SF나 예술 영화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을, 지금 다시 보며 ‘나’라는 존재가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자문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