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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카피하다 다시보기 (지리, 정체성, 언어의 틈)

by mongshoulder 2025. 7. 21.

사랑을 카피하다 영화 포스터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는 이탈리아 토스카나를 배경으로, 남녀 간의 관계, 감정, 소통의 문제를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유럽 예술영화 특유의 정서적 거리감과 다층적 의미 구조 속에서, 이 영화는 감정이 실재하는 것인지 복제된 것인지, 정체성과 사랑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본문에서는 지리적 배경이 주는 정서, 정체성의 불확실성, 언어의 불일치가 영화에서 어떻게 관계의 균열로 표현되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토스카나의 지리가 말해주는 감정의 온도차

‘사랑을 카피하다’는 아름다운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을 무대로 한다. 그러나 이 지리는 단지 엽서 같은 풍경으로 그치지 않는다. 영화에서 토스카나는 사랑의 본질과 정서를 실험하는 배경이자, 주인공들의 감정 간극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적 상징으로 작용한다. 초반부, 주인공 제임스와 엘은 피렌체에서 열린 북토크 현장에서 처음 등장한다. 고전 예술과 역사로 가득한 도시지만, 이들의 대화는 건조하고 일방적이다. 장소의 아름다움과 감정의 냉랭함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은 그 자체로 이 영화의 핵심 정서를 시사한다.

이후 이들은 자동차를 타고 소도시로 이동하고, 조용한 카페, 오래된 골목길, 벽화가 있는 작은 광장, 그리고 토스카나 시골의 미술관 등을 거치며 다양한 장소에 머문다. 이 지리적 이동은 관계의 진전을 의미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오히려 감정적 충돌이 심화되는 여정을 따라간다. 영화는 시각적으로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경치를 보여주지만, 그 속에 감춰진 불협화음을 통해 인간 관계의 불편한 진실을 들춘다. 토스카나의 고즈넉한 풍경은 결국 두 사람 사이에 자리 잡은 침묵과 오해, 그리고 감정의 이탈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지리는 이처럼 등장인물의 감정 상태를 외화하는 장치로 쓰인다. 좁은 골목길은 그들이 피할 수 없는 심리적 대면을 상징하고, 오래된 벽화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감정을 환기시킨다. 자동차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은 말로 풀어지지 않는 갈등을 고조시키며, 도시와 시골의 대비는 이성적 논리와 감정적 현실의 괴리를 상징한다. 지리적 배경이 관계의 정서를 결정짓는 힘을 가진 것이다.

특히 미술관에서의 장면은 ‘복제품도 원본과 같은 감정을 줄 수 있는가’라는 예술적 질문을 던지며, 그 배경으로 쓰인 건축과 공간이 감정의 진위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토스카나라는 지역은 단지 유럽의 한 장소가 아니라, 유럽적 감정 처리 방식—즉 감정을 직접적으로 터뜨리기보단 거리감 있게 바라보는 태도—를 함축한 무대다. 키아로스타미는 이 지리 안에서 관계의 온도를 조절하고, 거리감이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흐릿해진 정체성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혼란

‘사랑을 카피하다’가 관객을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지점은 바로 두 주인공의 정체성이다. 영화 초반부만 해도 제임스와 엘은 작가와 독자라는 명확한 관계로 소개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특히 토스카나 시골로 향하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남편, 아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이 전환은 명확한 설명 없이 이루어지며, 관객은 어느 순간 이들이 실제로 부부인지, 단순한 역할극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정체성은 여기서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정체성이란 역할이나 경력, 이력서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는 철학적 태도를 취한다. 즉, 제임스와 엘은 상황에 따라, 감정에 따라, 그리고 공간에 따라 서로에게 달리 반응하며, 그 안에서 정체성은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정체성의 불확실성은 감정을 진짜로 만들어줄 수도, 가짜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장치다.

관객은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이들은 처음 만난 사이인가?’ ‘실제로 과거에 결혼했었는가?’ ‘이 모든 것이 즉흥적 역할극인가?’ 그러나 감독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이 감정을 어떻게 주고받는지, 서로의 반응이 얼마나 진심처럼 느껴지는지를 통해 진짜인지 가짜인지보다 ‘그 순간 감정이 실재했는가’를 중심으로 보게 만든다. 이것은 키아로스타미가 보여주는 실존적 시선이며, 존재란 절대적인 것이 아닌 맥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반영한다.

이러한 정체성의 유동성은 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고정된 이름이나 상태가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이 서로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다. 엘이 보여주는 분노, 실망, 기대는 단지 연기가 아니라면 실제 부부의 감정과도 다를 바 없다. 제임스의 회피와 이성적 반응 역시, 과거에 쌓인 감정의 흔적이 아니고서야 설명되기 어렵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진짜 사랑이냐 가짜 사랑이냐”는 이분법이 아니라, “그 순간 진심이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정체성이 흐릿해질수록, 감정은 오히려 더 날카롭게 드러난다.

언어의 틈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비틀림

다국적 언어로 구성된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는 대사의 절반 이상이 영어로 진행되며, 그 외에도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가 주요하게 사용된다. 이처럼 언어의 틈은 영화 전체에서 관계의 혼란과 감정 왜곡을 발생시키는 주요 장치로 작용한다. 단순히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이 대화하는 것이 아닌, 그 말들이 진심으로 전달되지 못하는 과정 자체가 영화의 핵심 갈등을 드러낸다.

엘은 프랑스어 사용자이며, 영어도 능숙하게 사용하지만 감정을 표현할 때는 프랑스어가 더 자연스럽다. 제임스는 영국인으로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만, 감정 표현에 있어서는 언어보다는 이성적 논리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언어는 말 자체보다 말투, 속도, 억양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지만, 상이한 언어적 배경은 감정의 오해를 발생시키고,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진심에 닿지 못한 채 대화를 이어간다.

언어의 틈은 오해를 낳을 뿐 아니라, 감정의 정확한 전달을 막는다. 제임스는 엘의 말에 종종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엉뚱한 반응을 보이며, 엘은 그런 반응에 점점 실망한다. 이 언어의 비대칭은 영화 전체의 감정 곡선을 쥐락펴락하며,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듯 보이지만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든다. 언어는 여기서 진심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진심을 감추는 벽으로 기능한다.

또한 영화 후반부에서는 제3의 언어인 이탈리아어가 추가되면서, 관객 역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주인공이 이해하지 못하는 대사나 배경 인물과의 짧은 대화 속에서도 두 사람 사이의 감정적 벽은 더 두꺼워진다. 이 언어 혼합 구조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한계와 인간 관계에서 언어가 갖는 취약함을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사랑을 카피하다’는 “우리가 같은 언어를 말한다고 해서 같은 감정을 나누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는 언어적 교환을 넘어서, 그 이면에 깔린 감정의 결핍과 왜곡을 드러낸다. 언어는 때로 감정을 명확히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되지만,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감정을 흐리게 하고, 때로는 왜곡하며, 결국은 고립된 감정만을 남긴다. 언어의 틈이란 단어는 이 영화에서 가장 잔인한 관계의 단면이자, 서로가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결정적 이유로 기능한다.

‘사랑을 카피하다’는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유럽 예술영화 특유의 철학적 거리감과 감정의 미세한 파열음을 통해, 인간 관계를 본질적으로 되묻는 영화다. 토스카나의 지리는 감정의 무대를 시각화하고, 흐릿한 정체성은 관계의 실체를 해체하며, 언어의 틈은 진심과 오해 사이의 간극을 벌려 놓는다. 키아로스타미는 이러한 도구들을 통해 “사랑은 진짜여야만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는 정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감정의 파편을 보여주고, 그 파편들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게 한다. 진짜인지 복제인지보다, 감정이 그 순간 살아 있었는가를 묻는 이 시선은, 우리가 사람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을 유도한다. ‘사랑을 카피하다’는 복제된 사랑이 아닌, 복잡하고 애매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오래도록 기억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