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개봉한 영화 '부산행'은 한국형 좀비 장르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전 세계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단순한 재난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는 감염병이 휩쓴 사회의 혼란,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의 본질, 그리고 생존을 위한 선택 속에서 피어나는 숭고한 희생이라는 중요한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24년 현재, 팬데믹을 거친 우리는 이 영화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본 글에서는 감염병의 사회적 공포를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인간성의 빛과 어둠이 어떻게 드러났는지, 마지막으로 각 인물의 희생이 영화의 주제를 어떻게 강화했는지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자 한다.
좀비 바이러스로 본 사회적 감염병의 공포
'부산행'은 좀비라는 장르적 장치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감염병에 대한 공포를 다룬 영화다. 영화 속 바이러스는 기차 한 칸에서 다른 칸으로 퍼지며, 지역 사회를 순식간에 무력화시킨다. 이러한 묘사는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염병의 확산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특히 2020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한 전 세계 관객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감염병의 확산 경로, 공공 시스템의 붕괴, 사람들 사이의 불신과 혼란을 훨씬 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영화에서 감염은 물리적인 전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보의 부족, 정부의 무능, 타인을 의심하는 분위기 등이 마치 함께 전염되는 것처럼 묘사된다. 주인공 석우는 감염의 위험 앞에서도 자신과 딸의 안전만을 우선시하며,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초반에 감염병 확산 시 보였던 이기적 생존 본능을 그대로 반영한다. 또한 감염병이 야기하는 사회적 해체는 영화 속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기차라는 제한된 공간은 마치 봉쇄된 도시와 같으며, 이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다툼, 정보 은폐, 분열은 현실 세계의 감염병 사태와 무섭도록 닮아 있다. 감염자는 괴물로 치부되고, 비감염자 사이에서도 의심과 차별이 난무한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감염 자체보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인간 행동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좀비가 무섭기 때문이 아니라, 위기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이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이는 단순한 바이러스의 위협을 넘어, 공동체 의식의 부재와 시스템의 실패가 진짜 재난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2024년 현재,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의미가 깊다. 우리는 이제 바이러스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 체감했고, 그 속에서 공동체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부산행'은 단순한 좀비영화가 아니라, 감염병 시대의 사회적 민낯을 날카롭게 포착한 작품이다.
극한 상황 속 드러나는 인간성과 선택
‘부산행’의 진짜 공포는 좀비가 아니라, 인간이다. 이 영화는 재난 상황 속에서 인간성이 어떻게 시험받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특히 캐릭터 간의 갈등과 선택은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이 얼마나 얇은 경계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타인을 밀쳐내고, 또 누군가는 끝까지 손을 잡는다. 이 영화는 이 양극단의 행동을 통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석우는 초반에는 전형적인 자기중심적 인물이다. 딸과 자신만이 중요한 인물로, 타인의 생존에는 무관심하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행과 함께 그는 점차 변화하며, 자신의 잘못된 선택들을 반성하고 책임지는 쪽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성의 회복 과정이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연대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반대로 용석 역의 김의성은 철저히 이기적인 행동으로 일관한다. 그는 타인을 희생시켜 자신을 지키려 하고, 그 결과 더 많은 희생을 낳는다. 이 인물은 인간성의 붕괴를 상징하며, 집단 안에서의 이기심이 어떻게 공동체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행동이 그리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재난이나 감염병 상황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마동석이 연기한 상화 캐릭터는 인간성의 이상적 구현이다. 그는 물리적 힘뿐만 아니라, 타인을 지키는 리더십, 희생정신, 책임감을 모두 지닌 인물로, 관객에게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유미가 연기한 성경 역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자세로 인간성을 잃지 않는 모범을 보인다. 이처럼 영화는 각 인물의 선택과 태도를 통해 인간성의 다양한 층위를 조명한다. 단지 선악의 구분이 아니라, 인간이 위기 속에서 얼마나 유연하게 변화하고, 얼마나 쉽게 본성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이는 관객 각자에게 “나는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는 자문을 던지게 만든다.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재난은 외부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도 있고, 사회 시스템의 균열에도 숨어 있다. '부산행'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현대적 우화라 할 수 있다.
생존보다 위대한 희생가치의 드라마
‘부산행’은 재난 영화지만, 가장 큰 감동을 주는 지점은 ‘희생’이다. 단순한 생존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생명이 다른 이의 희생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며, 이 영화는 관객의 심장을 울린다. 특히 상화의 죽음, 석우의 마지막 선택, 그리고 아이를 지키기 위한 부모의 본능은 단순한 액션이나 서사로 설명되지 않는 깊은 울림을 준다. 마동석이 연기한 상화는 전형적인 영웅상과는 다르다. 그는 단지 힘이 센 남성이 아니라, 가족을 지키기 위한 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공동체를 지탱하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감염된 것을 알고도 두려움보다는 타인을 지키려는 의지를 보이며, 다른 이들의 생존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 그의 희생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공동체의 윤리와 책임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교과서다. 주인공 석우 역시 마지막에는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다. 그는 딸과 함께 탈출할 수 있었지만, 감염이 시작된 자신의 상태를 직시하고, 딸에게 물리적, 감정적 상처를 남기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 이 장면은 한국 영화사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감정적인 클라이맥스이며, 사랑과 책임, 부모됨의 무게를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이외에도 영화 곳곳에는 작지만 의미 있는 희생들이 존재한다. 연인을 구하려다 감염된 고등학생, 시민들을 위해 문을 열어준 무명의 승무원, 감염 위기 속에서도 아이를 감싸 안은 어머니 등, 이들의 작은 선택이 모여 영화는 감정적 깊이를 더해 간다. 그리고 이 모든 희생의 장면은 단순히 슬픈 장면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무엇이 생존보다 중요한가? 어떤 삶이 더 인간적인가? 2024년의 관객에게 이 메시지는 더욱 강력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팬데믹, 기후위기, 전쟁 등의 상황을 겪으며, 개인의 선택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목격했다. 희생은 더 이상 영화 속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선택이며, 공동체를 지속시키기 위한 필수 가치다. ‘부산행’은 결국, 인간의 본능적인 생존 욕구와 그 너머의 윤리적 선택 사이에서, 어떤 삶이 더 가치 있는지를 묻는 영화다. 그리고 그 답은 각자의 가슴에 남는다.
‘부산행’은 좀비라는 외피를 쓴, 감염병과 인간성, 그리고 희생이라는 주제를 품은 심오한 사회 드라마다. 지금의 우리는 이 영화를 단순한 오락물로 소비할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되짚어보고, 감염병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과 가치를 비추는 거울로 삼아야 한다. 지금, ‘부산행’을 다시 보자.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어떤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