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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과 지금 우리 (세대갈등, 헌신의 의미, 공동체 가치)

by mongshoulder 2025. 6. 8.

영화 <국제시장> 포스터 사진

 

영화 ‘국제시장’은 단순한 가족 드라마가 아니다. 이 작품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시간을 살아낸 한 남자의 이야기이자, 대한민국 중장년 세대가 겪어온 희생과 책임을 담은 사회적 기록이다. 그러나 지금 세대에게는 그것이 더 이상 ‘당연한 가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세대 간 인식의 차이는 갈등으로 번지고, 헌신이라는 단어도 ‘희생 강요’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본 리뷰에서는 영화 ‘국제시장’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공동체적 가치와 가족 안에서의 세대 갈등, 그리고 헌신의 의미를 다시 짚어본다.

세대갈등: ‘당연함’이 강요로 바뀌는 순간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는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인물이다. 어린 시절 흥남철수 작전 중 아버지와 헤어지고, 가장이 된 그는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꿈도, 사랑도, 심지어 감정조차 억누르며 살아간다. 그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목표에 맞춰 단단히 고정한다. “가족을 지킨다.” 이러한 희생은 과거 세대에게는 당연한 미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영화 후반, 덕수의 자녀들은 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편해한다. 여기서 우리는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한 ‘세대 인식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자기실현’을 중시하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낡은 방식으로 여긴다. 반면, 덕수와 같은 세대는 “너희는 이해 못 해도 된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참는 거다”라는 논리로 침묵의 헌신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이 차이는 결국 감정의 단절로 이어지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 없이 오해와 충돌만이 반복된다. ‘국제시장’은 이런 갈등의 본질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덕수가 자녀와 말다툼을 벌이는 장면은 단순한 의견 충돌이 아니라, 시대가 바뀌면서 ‘가치 기준’이 충돌하는 장면이다. 과거에는 ‘가장의 책임’이 무엇보다 우선시됐지만, 현재는 ‘개인의 삶’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로 변모했다. 두 입장은 모두 타당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세대 간 갈등은 단지 나이 차이에서 오는 문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며 쌓아온 경험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구조적 문제다. ‘국제시장’은 그 점을 정확히 짚는다. 덕수의 선택이 옳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의 선택이 ‘진심’이었다는 것, 그리고 자녀 세대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일 것인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비판이 아니라, 대화다.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를 듣고, ‘왜 지금 우리는 다르게 살고 싶은지’를 설명하며 서로를 향한 이해의 다리를 놓는 것. ‘국제시장’은 그 출발점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헌신의 의미: 무게를 견디는 자들의 이야기

‘국제시장’에서 덕수의 삶은 헌신의 연속이다. 독일 탄광으로 떠나 목숨을 걸고 광산에서 일하고, 베트남 전쟁에 파병돼 생사의 위협을 감수하며, 자식들의 대학 등록금을 위해 거리에서 생선장사를 한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희생을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든 과정을 ‘해야 할 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태도는 헌신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오늘날 ‘헌신’은 자주 ‘희생 강요’로 인식된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헌신은 ‘자기 삶을 포기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덕수의 이야기를 보면, 그 헌신은 억압이나 강요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감당해낸 무게. ‘국제시장’은 이 무게의 진심을 시청자에게 정직하게 보여준다. 그의 삶은 누구의 명령도, 강요도 아닌 스스로의 다짐으로 이뤄진 연속이다. 자신이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책임지기로 했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는 쉼 없이 살아간다. 이 ‘자기 선택으로서의 헌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물론 우리는 과거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가족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 시대에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가족을 아끼고 책임지는 방식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신’이라는 가치가 단지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되는 건 또 다른 비극이다. 그 안에는 누군가의 눈물, 책임, 사명감,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덕수가 보여주는 삶은 바로 그런 복합적 감정의 결과물이다. 그는 불평하지 않고, 자기 몫을 다하며, 누군가에게 기댈 줄도 모르는 세대였다. 그런 삶은 지지와 공감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쉽게 ‘희생하지 말라’는 조언만을 반복한다. 물론 자기 삶을 지키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헌신’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누군가의 뜨거운 삶을 비하하거나 축소하지는 말아야 한다. ‘국제시장’은 그 메시지를 눈물 없이 담담하게, 그러나 깊이 있게 전달한다.

공동체 가치: 가족이라는 이름의 사회

가족은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다. ‘국제시장’은 바로 이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했고, 또 어떻게 유지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덕수의 가족은 시대에 따라 해체되고 재결합하며, 사회 구조의 흐름 속에서 그 의미를 계속 바꿔간다. 초반부 덕수는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가족의 기둥이 된다. 그에게 가족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었다. 그리고 이 책임을 위해 덕수는 타지에서 노동하고, 위험 속에서도 살아남아 돌아온다. 그의 희생은 단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의지였다. 중반 이후 덕수의 가족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자식들은 성장해 자기 진로를 찾아 떠나고, 아내는 가정을 보살피며 안정을 유지하려 한다. 덕수는 이 과정 속에서도 중심을 놓지 않으려 애쓴다. 왜냐하면 그는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세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오늘날 우리가 가진 공동체에 대한 인식과 큰 차이가 드러난다. 지금의 가족은 ‘함께 하는 것’보다는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을 우선시한다. 개인주의적 가치가 확산되며, 각자의 공간과 시간이 중요해졌고, 가족 내에서도 ‘거리 두기’가 자연스러워졌다. 이런 변화는 때로 건강한 관계 유지로 작용하지만, 반대로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배려를 잊게 만들기도 한다. ‘국제시장’은 이런 흐름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여전히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영화는 말한다. 공동체는 때때로 무겁고 귀찮으며, 얽매이게 만들지만, 결국 위기의 순간 가장 먼저 지켜주는 것도 공동체라는 사실을. 덕수가 전쟁, 사고, 경제난을 겪으며 무너질 듯하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가족’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갈등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한다는 것, 서로를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을 통해 공동체의 진짜 가치를 다시 묻는다. 지금 우리가 다시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는, 팬데믹 이후 공동체가 급속히 해체되고 있는 시대에서, 연대와 지지의 중요성을 다시 돌아보기 위함이다.

‘국제시장’은 단순히 눈물 짓게 하는 감동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지금 세대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희는 우리를 이해할 수 있겠니?”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너희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니?” 세대 간 간극은 존재하지만,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화’다. 우리는 누군가의 헌신 덕분에 이 자리에 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는 우리가 어떤 공동체로 기억될지 고민해야 한다. ‘국제시장’은 그 출발점이자,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