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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뷰티 감상포인트 (중년, 반성, 관조)

by mongshoulder 2025. 7. 24.

그레이트 뷰티 영화 포스터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그레이트 뷰티(The Great Beauty, 2013)》는 화려하고 퇴폐적인 로마의 삶 속에서 존재와 시간, 인생의 의미를 묻는 걸작이다. 한때 문단의 중심에 섰던 작가 '젭 감바르델라'는 65세의 생일 이후 스스로를 돌아보며 화려함 속의 공허를 체험하게 된다. 이 영화는 도시의 풍경, 음악, 인물, 카메라의 시선 전부를 통해 중년 이후의 삶과 인간 내면의 고요한 사유를 촘촘히 그려낸다. 본 리뷰에서는 중년, 반성, 관조라는 키워드 중심으로 이 작품이 전하는 깊은 메시지를 해석해본다.

중년 – 화려함 뒤의 침묵

《그레이트 뷰티》의 주인공 젭은 한때 유망한 작가였지만, 지금은 로마의 상류 사교계 중심에 선 인물이다. 그는 생일 파티의 중심에서 모든 조명을 받지만, 그 내면은 전혀 반대의 상태다. 그의 얼굴에 비치는 조명은 생기와 기쁨이 아닌, 반복되는 나날 속의 권태와 무감각이다. 이 영화는 바로 이 중년 이후의 시간, 즉 인생의 정점 이후에 도달한 존재가 느끼는 공허를 가장 섬세하게 표현한다. 젭은 이미 많은 것을 경험했고, 이제는 더 이상 어떤 것도 새롭지 않다. 그가 문학에서 손을 뗀 이유는 삶이 더 이상 새롭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의 반은 지나갔고, 남은 시간은 더 이상 성장의 시간이라기보다, 회고와 해체의 시간이다. 이 지점에서 소렌티노 감독은 로마라는 도시를 젭의 내면처럼 사용한다. 고대 유적이 섞인 화려한 도시, 그 안에서 매일 밤 열리는 파티와 공연, 예술적 만남—all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생기를 잃은 풍경처럼 묘사된다. 중년은 이 영화에서 단지 나이가 아니라, 인식의 전환점이다. 더 이상 사랑도, 명성도, 젊음도 욕망하지 않게 되는 시간. 하지만 동시에, 인생의 가장 깊은 질문들과 마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젭이 겪는 감정은 단순한 슬픔이나 우울이 아닌, 삶 전체를 바라보는 차분한 시선이다. 우리는 그의 고요한 산책, 옛 친구들과의 대화, 옛 연인의 기억 속에서 인간이 자기 삶을 해석하는 방식을 엿보게 된다. 이러한 중년의 시간은 영화 속에서 특정 사건이 아니라 정서의 누적으로 형성된다. 감독은 젭이 바라보는 로마의 풍경, 밤의 조명, 소녀의 춤, 수녀의 침묵 등을 통해 그가 겪는 내면의 떨림을 시각화한다. 결국 《그레이트 뷰티》의 중년은 생물학적 개념이 아니라, 존재론적 인식의 변화다. 젭은 묻는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겨왔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모든 관객에게 던져진다.

반성 – 지난 생의 조각들을 돌아보다

젭의 여정은 자아성찰과 반성의 연속이다. 영화가 전개되면서 그는 점점 더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기억, 첫사랑의 흔적, 오래된 사진, 과거의 동료와의 재회—모든 순간들이 그를 향해 돌아오며, 그가 외면해온 시간들을 소환한다. 이 영화에서 반성은 후회가 아니라, 기억의 윤색을 벗긴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로 그려진다. 젭이 젊었을 때 썼던 소설 《인간 기계》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지만, 그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그는 삶을 충분히 보지 않았고, 삶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성공의 껍질만 가졌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그 껍질을 벗기고 삶의 알맹이를 보려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파티가 끝나고 홀로 남는 자신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삶이 과연 진정한 것이었는지 묻기 시작한다. 반성의 장면은 대부분 조용한 공간에서 일어난다. 화려한 파티의 외곽, 정적이 흐르는 고대 수도원, 바닷가의 절벽 같은 장소에서 젭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떻게 살았는가?" 이 질문은 영화 전체를 가로지르는 주제이며, 결국에는 우리 자신의 삶에도 투영된다.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반성의 장면은 과거의 연인이 죽고 난 후, 그녀의 일기장을 보게 되는 순간이다. 거기에는 “젭은 내 인생의 사랑이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젭은 그 문장을 읽으며 충격을 받는다. 그는 그 기억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지만, 그녀는 그것을 삶의 중심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 장면은 인간이 기억하는 방식과, 우리가 스스로의 삶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는 방식을 명확히 드러낸다. 결국 반성은 이 영화에서 자기 해체와 같다. 과거의 나를 낯설게 보는 것, 나와 세상의 관계를 다시 조율하는 것, 그리고 진실하게 “나는 지금 만족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젭은 대답을 명확히 하지 않지만, 영화는 그의 침묵 속에서 그 진심을 전한다.

관조 – 아름다움을 보는 새로운 시선

《그레이트 뷰티》의 진정한 힘은 관조의 미학에 있다. 소렌티노 감독은 벨라 타르나 펠리니, 앙리 드뷔르와 같은 감독들처럼, 사건이 아닌 시선으로 이야기를 밀고 간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화면 속 풍경, 음악, 인물의 움직임이 그 자체로 의미를 품는다. 젭은 말수가 적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가 올려다보는 로마의 천장, 거리를 걷는 노인, 거리의 무희, 새벽의 조용한 광장—all은 그냥 거기에 존재하지만, 젭의 시선을 통해 전혀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위대한 아름다움’의 핵심이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것을 볼 수 있는 시선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관조는 여기서 단순히 감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통과하는 방식이다. 더 이상 정복하거나 설명하려는 태도가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서 나름의 감정을 얻는 방식. 소렌티노는 이 과정을 카메라의 리듬으로 구현한다. 롱테이크, 느린 패닝, 음악에 맞춘 무빙—all은 인위적이라기보다, 세계 자체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젭은 관조 속에서 변한다. 그는 떠나지 않고, 움직이지 않지만, 시선은 깊어진다. 수녀와 대화하는 장면, 절벽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 공연을 멍하니 보는 장면—all은 외부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내면적으로는 거대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관조의 힘이며, 예술이 가능한 지점이다. 이 영화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단지 예쁜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도 감정을 만들어내는 능력, 즉 내면에서 세상을 다시 보는 힘이다. 그리고 이 관조의 시선은 결국 모든 관객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습니까?"

《그레이트 뷰티》는 단지 로마를 아름답게 찍은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중년의 통찰, 삶에 대한 반성, 침묵 속 관조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끝내 아름다움을 회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술적 탐구다. 소렌티노는 말한다. "인생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방식에 달렸다." 이 영화를 본 우리 또한, 삶을 보는 시선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